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은중과 상연 결말 원작 퀴어 코드 분석

by 오_다봄 2025. 9. 24.

 

 

은중과 상연 결말 원작 퀴어 코드 분석

2025년 넷플릭스가 선보인 오리지널 시리즈 '은중과 상연'은 단순한 드라마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며 막을 내렸습니다. 배우 김고은과 박지현의 섬세한 연기력으로 구현된 류은중과 천상연의 30년에 걸친 서사는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과 함께 복합적인 질문을 던졌습니다. 본고에서는 이 드라마의 서사 구조, 핵심적인 퀴어 코드, 그리고 논쟁적 결말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자 합니다.

서사 구조의 이중주: 1부와 2부의 극명한 대비

'은중과 상연'은 총 15부작이라는 다소 긴 호흡을 통해 두 인물의 생애를 조망합니다. 이 과정에서 제작진은 의도적으로 극의 톤앤매너를 양분하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시간 흐름의 표현을 넘어, 관계의 질적 변화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로서 기능합니다.

1부 (1-8화): 관계의 정립과 갈등의 표면화

드라마의 전반부는 10대와 20대 시절의 은중과 상연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학창 시절의 풋풋함, 대학 동아리 활동, 그리고 '김상학'과 '천상학'이라는 동명이인을 매개로 한 삼각관계 등 외부적 갈등 요소가 서사를 주도합니다. 이 시기 두 사람의 관계는 동경과 질투, 선망과 경쟁심이 혼재된 역동적인 형태로 그려집니다. 특히, 서사 전개의 속도감이 빠르고 사건 중심의 플롯이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구간입니다. 이는 관계의 원형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보여주는 필수적인 빌드업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2부 (9-15화): 감정의 심화와 내적 성찰로의 전환

30대와 40대를 그리는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드라마의 결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외부적 갈등은 잦아들고, 대신 두 인물의 내면으로 깊이 침잠합니다.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고뇌, 그리고 상연의 말기 암 진단이라는 결정적 사건은 이들의 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끕니다. 일부 시청자들은 이 구간의 전개가 다소 느리고 반복적이라 평가하기도 했으나, 이는 제작진이 의도한 연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폭풍 같던 청춘을 지나 인생의 무게를 감내하며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느린 호흡으로 담아내어 감정의 밀도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우정과 사랑의 경계: 퀴어 코드의 심층적 해부

'은중과 상연'을 둘러싼 가장 뜨거운 담론은 단연 '퀴어 코드'의 해석입니다. 드라마는 두 인물의 관계를 동성애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지만, 서사 곳곳에 배치된 상징과 대사, 그리고 감정선은 이들의 관계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다는 강력한 암시를 제공합니다.

'말하지 않은 감정'의 미학: 서브텍스트 분석

이 드라마의 퀴어 코드는 노골적인 표현 대신 서브텍스트(Subtext), 즉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통해 발현됩니다. "너는 내 인생의 모든 장면에 있었어", "네가 없으면 내 이야기도 없어"와 같은 대사들은 이성애적 관계의 문법을 차용한 것으로, 단순 우정의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깊은 정서적 유대를 드러냅니다. 이는 시청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김으로써, 관계의 본질에 대해 더욱 깊이 사유하게 만드는 고도의 서사 전략입니다.

유사 장르와의 비교 분석: <칠월과 안생>을 넘어서

'은중과 상연'의 서사는 영화 <칠월과 안생> 및 이를 리메이크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와 유사한 궤를 그립니다. 두 여성이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애증의 관계를 이어가지만, 결국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구원이자 또 다른 자신이었음을 깨닫는 구조는 여성 서사의 중요한 클리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은중과 상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남성 인물(김상학, 천상학)들을 관계의 기폭제 혹은 변수로만 활용할 뿐, 서사의 중심에서 의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오롯이 두 여성의 관계 자체에 현미경을 들이댑니다. 이는 관계의 본질이 이성애적 질투가 아닌, 존재론적 갈망에 있음을 명확히 하는 지점입니다.

결말에 대한 고찰: 왜 조력 사망이었는가?

드라마는 상연이 스위스에서 조력 사망(Assisted Suicide)을 선택하고, 은중이 그 마지막 여정을 동행하는 것으로 충격적인 마무리를 짓습니다. 이 결말은 생명 윤리에 대한 논쟁과 함께, 두 사람의 관계를 완성하는 핵심 장치로서 다층적인 해석을 낳았습니다.

존엄한 죽음과 '선택'의 무게

상연의 조력 사망 선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마지막까지 주체적으로 마무리하려는 능동적 행위로 그려집니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연명하기보다 존엄을 지키며 삶을 끝맺겠다는 그녀의 의지는 현대 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웰다잉(Well-Dying)'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녀가 인생의 마지막 동반자로 가족이 아닌 은중을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를 넘어, 영혼의 동반자로서 서로를 인정한 두 사람의 관계가 도달한 최종 형태를 상징합니다.

은중의 역할: 단순한 동반자를 넘어선 '증인'

은중은 상연의 죽음을 돕는 조력자이자, 그녀의 삶 전체를 기억하고 기록할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습니다. 상연이 남긴 일기장은 은중의 새로운 소설이 될 것을 암시하며, 이는 한 사람의 인생이 문학 작품으로 승화되어 영속성을 얻는 메타포(Metaphor)로 작용합니다. 결국 상연은 육체적으로 소멸하지만, 은중의 글을 통해 영원히 살아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죽음조차 갈라놓을 수 없는 두 사람의 견고한 연결을 보여주는 가장 문학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15부작이라는 형식: 넷플릭스 시대의 딜레마

'은중과 상연'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적 시각 중 하나는 15부작이라는 분량의 적절성 문제입니다. 특히 글로벌 OTT 플랫폼의 콘텐츠들이 8~10부작 내외의 압축적인 서사를 선호하는 경향과 비교할 때, '은중과 상연'의 분량은 다소 과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서사의 밀도 문제와 불필요한 서브플롯

특히 드라마 후반부에 등장하는 일부 직장 내 갈등이나 주변 인물들의 서사는 핵심적인 은중과 상연의 감정선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입니다. 서사의 밀도를 떨어뜨리는 이러한 서브플롯들을 덜어내고 12부작 정도로 이야기를 압축했다면, 훨씬 더 강렬하고 긴장감 있는 감정선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이 준 선물

하지만 역설적으로 15부작이라는 긴 호흡이 있었기에 10대부터 40대까지, 30년에 걸친 두 사람의 관계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낼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짧은 호흡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시간의 퇴적과 감정의 숙성 과정을 차분히 따라갈 수 있었던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명백한 장점입니다.

결론적으로 '은중과 상연'은 우정, 사랑, 질투, 동경, 그리고 죽음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두 여성의 관계를 통해 섬세하게 직조해낸 수작입니다. 명확한 정의를 거부하는 관계의 모호함과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하는 존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며, 2025년 가장 문제적인 드라마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 분명합니다.